신현거논설위원

밥을 굶고는 살 수 없지만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처럼 먹는 것만으로 만족될 수 없는 존재라는데 문제가 있다. 사람의 몸은 자랄 만큼 자라면 멈추지만 마음 속은 생명을 다할 때까지 영글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제 마음 속을 채우기도 하고 비워내기도 한다. 마음 속에 새로운 바깥 지식을 넣어 주는 책이 있다. 이런 책은 이(利)로운 것이다. 이로운 책은 낡은 지식을 버리게 하고 새것으로 채워 준다.

그러나 자기를 비워낸 마음 속을 밝고 맑게 비워 주는 책도 있다. 이런 책은 슬기로운 것이다. 슬기로운 책은 두루 통하며 어울리는 체험을 하게 하고 제 고집을 버리게 한다.

정보화 시대를 향해 치닫는 현실에 적응하자면 이로운 책을 가까이 할수록 이득이 된다. 현대는 새로운 지식이 날마다 쏟아지는 세상이다. 정보에 뒤지면 저절로 무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을 위하여 이로운 책을 항상 읽어 두어야 한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시시각각으로 긴장하게 하고 초조하게 하면서 정보화 기대는 인간을 날이 갈수록 토끼몰이 하듯이 휘몰아찬다. 이는 그만큼 해야할 일거리가 많다는 것을 뜻하는 셈이다. 그래서 능력이 뛰어난 인간을 이제는 두뇌(brain)라고 부른다. 인간을 두뇌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을 새로운 생각의 은행(idea- bank)처럼 여기거나 발상의 뒤주(think-tank)처럼 취급하려는 것이다. 결국 정보화 시대는 곧 두뇌의 시대임을 말해준다.

물질문명의 승패는 지하자원에 의해서 죄우 되었다. 그런 시대는 20세기로 끝날 전망이다. 이미 전자 문명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전자문명의 승패는 두뇌에 의해서 좌우될 것이 분명하다. 물질문명의 기술이 기능적이었다면 전자문명의 기술은 창조력을 요구한다.

창조력은 새로운 발상을 길어내는 샘물과 같다. 샘물이 얕으면 몇 번 길어내면 단번에 바닥이 드러난다. 새로운 발상이 다시 솟아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수원(水源)을 개발해야 한다. 새로운 정보를 만나게 하는 이로운 책은 창조의 수맥(水脈)과 같다.

창조의 수맥은 욕심을 부린다고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자기 중심의 아집에 사로잡혀 있으면 창조력은 고갈되고 만다. 창조력은 텅 빈 마음에서 태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항상 새로운 것을 바란다면 마음 속에 묻어 있는 낡은 때를 벗겨내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마음을 맑은 가을처럼 해야 신비로운 것들이 비춰지게 된다. 마음속에 묻어 있는 때를 털어내는 빗자루로 슬기로운 책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사물을 알게하는 이로운 책보다 오히려 자기를 알게하는 슬기로운 책을 더 많이 읽어야 더욱 창조력을 샘솟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력은 상상력의 길을 밟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상상력은 남으로부터 빌릴 수가 없다. 그러한 상상력은 자유로워야 한다.

  걸림 업시 자유로운 마음을 허심(虛心)이라고 한다. 욕망은 상상력을 질식시키고 허심은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준다. 날개를 달고 싶다면 슬기로운 책을 읽어라. 슬기로운 책은 사물에 대한 지식을 주는 쪽보다 자기에 대해 주려고 한다. 사물을 제대로 관찬할 수 있게 되려면 먼저 자기를 성찰(省察)하는 마음씨가 앞서야 한다.

직업 의식에 따라 이로운 책을 읽으면서 자기를 살펴보게 하는 슬기로운 책을 멀리하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꼴이 된다. 본래 이로운 책은 생활의 윤택을 가능하게 하지만 생명의 열락(悅樂)을 체험하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독서 역시 편식을 하면 내면의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는 법이다.